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(문단 편집) === 초기 === 알렉세이는 1690년, [[표트르 대제|표트르]]와 예브도키야 로푸히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.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박대하는 걸 보았고[* 표트르 대제는 어머니 나탈리야 나리쉬키나의 명령으로 결혼한 데다 전형적인 러시아 여인이었던 예브도키야를 싫어했다.], 거기다 1698년에는 예브도키야를 [[수녀원]]에 집어넣는 걸 보았다. 당연히 알렉세이는 자신의 아버지 표트르를 증오하기 시작했다. 하지만 표트르는 자신의 황태자를 자신을 닮게 키우고 싶었다. 그는 아들이 자신의 서구화 개혁을 이어주기를 바랬다. 그는 [[러시아인]] 가정교사를 해임하고, [[독일인]] 가정교사를 임명해 알렉세이에게 지리, 역사 등을 가르치게 했다. 표트르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했다. 13살이 되던 1703년 표트르는 아들에게 포병으로 [[대북방전쟁]]에 종군하게 했다. [[나르바]] 요새가 함락될 때 알렉세이는 그 현장에 있었다. 하지만 알렉세이는 전쟁과는 영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. 그는 신학과 교회학에 빠져들었다. 교회에 냉소적이던 차르로서는 열불이 뻗칠 일이었다. 당연히 부자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한다. 거기다 알렉세이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구 세력들의 중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. 알렉세이의 중심에는 어머니처럼 표트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. 그들은 '''[[반역|표트르가 빨리 죽어주고 알렉세이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랬다.]]''' 표트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. 하지만 그는 일단 아들에게 아직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를 변화시켜보려고 했다. 1708년에 표트르는 알렉세이에게 [[스몰렌스크]] 인근에서 군대와 군량을 모아오라고 지시했다. 그리고 1709년 표트르는 자신의 아들을 [[작센 선제후국]]의 수도 [[드레스덴]]으로 보내 서구식 교육을 받게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